KT 화재 후 통신장애 겪고나니…통신재난 안전대책 필요성 절감
2018.11.29
이례적이었다. 첫눈답지 않게 펑펑 눈이 내렸던 11월 24일. 쌓인 눈과 함께 모든 것이 고립됐다. 단지 통신이 두절된다는 것이 이렇게 큰일인 줄 몰랐다. 미리 약속한 친구와 점심 장소를 정하려고 전화를 거는데,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저 휴대폰이 고장났나보다 했다.
지역을 벗어나자 문자가 속속이 도착했다.
지역을 벗어나자 문자가 도착했다.
“오늘 왜 이러지? 눈이 와서 통화량이 폭주했나봐.”
전화를 안 받는다며 필자 집까지 찾아 온 친구와 근처 식당에 갔지만 점심 역시 먹을 수 없었다. 주인은 카드기계 작동이 안 된다며 현금결제가 아니면 식사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동안 카드와 스마트폰 홍채 결제에 익숙해졌던 걸까. 둘 다 현금이 없었던 바람에 다른 가게로 갔지만 같은 소리를 들었다.
이왕이면 맛집으로 가자는 친구 말에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밀렸던 문자가 연달아 도착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보냈던 문자 역시 전송이 됐다. 불현듯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서대문구 KT 아현지사에서 화재가 나 통신이 두절됐던 것이다.
서울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사흘째 통신·금융대란이 이어진 26일 서울 충정로의 한 식당에
서울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사흘째 통신·금융대란이 이어진 26일 서울 충정로의 한 식당에 ‘KT 화재사고로 카드결제가 안됩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있다.(출처=뉴스1)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주변은 다른 세상 같았다. 가게마다 통신장애로 현금결제가 어렵다는 문구들이 붙어 있었다. 첫눈 오면 치킨을 먹겠다고 별렀던 아이들은 전화나 인터넷이 안돼 주문을 못했다며 화가 나있었다.
주말이라 아이들을 보러 오신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즐겨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뉴스까지 못 보니, 무슨 일이 났는지 모르겠다며 언제 되는 지 알아보라고 재촉했다. 필자 역시 인터넷으로 해야할 일들이 가득 있던 차,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잘못 온 상품을 반품해야 하는 것도, 수수료 없이 가능한 인터넷 뱅킹도, 무엇보다 연락 조차도 당장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제한구역서비스라는 걸 보니 무언가 큰 일이 벌여진 거 같아 재난의미가 더 다가왔다.
제한구역서비스라는 걸 보니 무언가 큰 일이 벌여진 거 같아, 재난의 의미가 한층 다가왔다.
지루하다 못해 지겹다고 불평하던 작은 아이는 친구 집으로 가버렸고, 숙제를 못해 잠이나 자야겠다던 큰 아이도 투덜댔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되돌아가셨다. 그나마 인터폰으로 연결된 관리사무소도 속수무책이었다.(세상에나. 관리소 목소리를 듣고 감동한 적은 처음 같다. 집 밖의 누군가와 연락된다는 것이 기쁘기까지 했다.)
그저 기다려야 하는 게 불안했고, 처음 있는 일이라 뭐부터 해야 될지 몰랐다. 집안은 아무 소리 없이 적막했다. 평소 이렇게까지 통신에 의존하고 있었나 싶어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텔레비전 화면은 내내 이 상태였다.
수차례 전원을 껐다 켜도 텔레비전 화면은 내내 이 상태였다.
하루가 지났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제한구역서비스라고 쓰인 휴대폰 화면과 전화를 눌러도 긴급통화만 가능하다는 말이 더 섬뜩하게 다가왔다.
가족이 모두 같은 통신사여서 와이파이를 공유하지 못했고, 계속 어딘가로 확인을 위한 메시지나 전화를 했지만, 그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1월 26일 긴급회의를 열고, 변화하는 통신에 걸맞는 안전한 환경으로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1월 27일 행안부, 방통위, 소방청, 국토부 등과 통신사들이 참여한 ‘통신재난 관리체계 개선 TF’가 출범했다. 또한 올 12월 말까지 재발 방지와 재난 대응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세부적으로는 통신시설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 통신시설 종합점검 실시 ▲ 500m 미만 통신구 화재방지시설 설치 추진 ▲ 정부의 통신시설 재난관리 등급체계 개선 ▲ 사고유형별 대응 매뉴얼 마련 ▲ 우회로 확보를 위한 통신사 간 사전 협력체계 구축 등을 강구한다는 방침이다.
전화를 걸려고 하면 긴급호만 걸수 있다고 나온다
전화를 걸려고 하니 긴급호만 걸수 있다고 나왔다.
급한 일은 외부에 나가 해가면서 보냈다. 밤이 되면서 서서히 인터넷이 안정되고 뉴스와 소식을 들으니 일단 살 것 같았다.
텔레비전을 보니 ATM기에서 헤매거나 공중전화를 찾는 사람들과 자영업자 등 필자보다 더한 상황들을 알 수 있었다. 필자 역시 당황한 탓에 라디오를 켜지 않았던 것도 비로소 떠올랐다.
친구에게 메시지가 보내지지 않았다,
친구에게 메시지가 보내지지 않았다.
길고 긴 이틀이었다. 어떤 소식도 듣거나 전할 수 없는 상황이 가져온 공포를 겪고 나니 실감이 난다. 그렇기에 정부의 대책이 더더욱 기다려진다.
더욱이 행정안전부가 국민재난안전포털, 안전디딤돌 앱에 대규모 통신마비 사고 시 국민행동요령지침을 마련하기로 했다니, 하루 빨리 나왔으면 한다. 정부와 통신사, 국민 모두가 함께 철저히 준비할 수 있도록 말이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윤경